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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8회 반야학술상 수상자 강연자료(이자랑 교수)http://banya.pibs-app.net/files | 반야불교문화연구원 | 2018-11-06 | 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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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회 반야학술상 수상자 강연자료(임승택 교수)http://banya.pibs-app.net/files | 반야불교문화연구원 | 2018-02-26 | 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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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7회 반야학술상 수상자 강연자료(한자경 교수)http://banya.pibs-app.net/files | 반야불교문화연구원 | 2018-02-26 | 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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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국(서울대 철학과) 먼저 반야학술상이라는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반야학술상이 통도사에서 주관하는 상이기에 반야학술상은 저에게는 더욱 귀한 상으로 다가옵니다. 이는 통도사는 무엇보다도 제가 존경해 마지않는 경봉스님께서 오랫동안 주석하셨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30대에 경봉 스님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꺼내 보곤 하였습니다. 주장자를 짚고 반듯하게 서서 형형한 눈빛으로 앞을 보고 계셨던 경봉 스님의 모습은 저에게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서양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지만 불교에 큰 애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불교는 서양철학에서 보기 힘든 정신의 깊이에 닿아 있을 뿐 아니라 중관학과 유식불교에서 보듯이 사물의 실상을 파악하고 인간의 마음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서양철학에 못지않은 정치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서양철학을 주로 연구하면서도 일찍부터 서양철학과 불교사상의 비교를 저의 가장 주요한 철학적 과제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동안 저는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 『니체와 불교』라는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려고 했으며, 현재는 쇼펜하우어와 불교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또한 이번에 수상하게 된 저의 논문 <유식불교의 삼성설과 하이데거의 실존분석의 비교>를 발전시켜서 유식불교와 하이데거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으로 있습니다. 일찍부터 많은 학자들이 하이데거 사상이 불교 사상에 대해서 갖는 가까움에 주목했습니다. 서양에서 나타난 수많은 사상들 중 특히 하이데거의 사상이 동양의 불교사상에 그렇게 큰 가까움을 갖게 된 까닭은, 하이데거가 서양의 전통형이상학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유방식을 개척하려고 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불교적인 사유방식에 가깝게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까움은 하이데거 자신이 불교 사상을 직접 접하면서 이러한 사상들에 담긴 통찰들을 수용하는 가운데 더욱 심화되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일설에 의하면 하이데거는 선불교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선불교를 서양에 소개한 일본의 스스끼 다이세츠의 선소개서를 읽은 후 ‘자신이 말하려고 한 것은 이미 이 책에 다 있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형이상학은 존재자들의 근거를 따져들어 가는 사유방식에 의해서 근본적으로 지배되어 왔다고 봅니다. 이러한 사유에는 인간의 지성적 능력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이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존재자들을 실마리로 하여 그러한 존재자들의 공통된 본질과 존재자들 전체의 궁극적인 존재근거를 드러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낙천적인 믿음은 만물의 존재구조는 만물의 근거를 따져 들어가는 인간 지성의 구조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전제에 입각해 있습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서양의 형이상학은 사실은 세계의 실상 자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성이 자신의 개념틀을 강요하면서 세계의 실상을 은폐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플라톤 이래의 서양의 형이상학이 이데아나 신과 같은 영원한 존재를 상정하고 그것에 의거함으로써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표해 왔다면, 근대과학과 그것에 입각한 근대기술은 사물들을 조작하고 지배함으로써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학적인 분석만이 사물의 진리를 드러내는 유일하게 타당한 사고방식으로 보고 있지만, 하이데거는 과학적 분석 역시 서양의 형이상학과 마찬가지로 사물의 진리를 그 자체로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들의 이해관심에 입각해서 사물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과학적인 분석은 사물을 기술적으로 조작하고 지배하려는 이해관심의 시각에서 존재자들을 고찰하기 때문에 존재자들은 그 자체로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러한 이해관심의 관점에 의해서 여과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수세기 동안 찬미되어 오던 이성이야말로 사유의 가장 완강한 적대자라는 사실을 우리가 경험하게 될 때에야 비로소 [참다운] 사유는 시작된다.” 사물의 실상을 그 자체로서 드러내기 위해서는 사물들을 조작하고 지배하려는 이해관심에서 벗어나 사물이 그 자체로서 스스로 드러나도록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인간은 사물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사물이 자신들의 진리를 여여(如如)하게 드러낼 수 있는 철저한 개방성(Offenheit)의 구현을 지향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이러한 개방성은 불교가 말하는 공성(空性)에 상응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하이데거와 불교에서는 사물의 실상 자체에 이르는 길로서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즉 하이데거는 방념(放念, Gelassenheit)을 말하고 있고 불교는 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올바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성을 예리하게 갈고 닦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의 날카로움을 꺾고 사물들에 대한 지배욕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가라앉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마음이란 몸과 분리된 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 전체를 다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양의 전통형이상학과 현대의 과학에서는 사물의 진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성을 예리하게 해야 한다고 보지만, 하이데거와 불교는 사물의 실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격 전체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물의 실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에서 인간은 비본래적인 실존에서 본래적 실존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불교에서는 인간은 각자(覺者)가 되어야 합니다. 하이데거는 불교와 마찬가지로 정교한 기술문명체계에 대해서 존재자들의 진리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단순하고 소박한’(einfach) 삶을 대안으로 내세웠습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서양의 역사를 세계 내에서 인간의 안전이 갈수록 공고해져 가는 진보의 역사로 보고 있지만, 하이데거는 오히려 서양의 역사를 인간이 진리에서 갈수록 멀어져 가는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 내에서 인간의 안전을 도모하는 인간의 노력은 현대의 과학기술문명에서 정점에 달하지만, 과학기술문명으로 귀착되는 서양의 역사를 진보의 역사로 볼 때는 동양과 서양 사이의 대화는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것이 됩니다. 이러한 역사이해에서는 서양은 과학기술문명을 탄생시킨 지역으로서 모든 지역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간주되는 반면에, 동양은 후진적인 지역으로 간주됩니다. 이렇게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에 비해 후진적인 것으로 간주될 때 두 문명 간의 대화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하이데거처럼 서양의 역사를 오히려 진리에서 멀어져 가는 역사로 볼 때 두 문명 간의 대화는 가능하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과학 기술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서양의 사유의 길과는 전적으로 다른 사유의 길을 개척해 나간 동양의 사상은 과학기술문명의 전일(專一)적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인 사유의 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하이데거와 동양사상, 특히 그 중에서 불교와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것들 간의 대화는 서로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요청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와 하이데거를 비교하는 저의 논문은 이상과 같이 불교 사상과 하이데거가 근본적으로 동일한 사태를 지향한다고 보는 관점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양자는 이렇게 동일한 사태를 지향하고 있기에 서로 간의 대화를 통해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서로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문제의식은 야스퍼스가 말하는 세계철학의 이념과 닿아 있습니다. 야스퍼스는 차축시대(車軸時代, Achsenzeit) 이래 동양과 서양의 고전적 철학에서는 인간과 세계를 포함하는 존재 전체의 실상에 대한 경험과 그것에 대한 통찰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차축시대란 기원전 800년 전부터 기원 후 200년 사이의 시대를 말합니다. 이 기간 동안에 중국, 인도, 이란, 팔레스티나, 그리스에서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이 지금까지의 우리의 의식을 형성한 정신적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근본물음들이 제기되었고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대답이 주어졌던 바, 이러한 대답들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삶과 사유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 신은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나 예수에서 보듯이 어떤 특정한 부족이나 민족만을 선민으로 우대하는 부족신과 민족신의 차원을 넘어서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인류 전체의 신으로 이해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신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갖는 존재로 이해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불교에서 보는 것처럼 인류뿐 아니라 살아 있는 것 전체를 존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상이 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서 보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을 신분이나 인종에서 찾지 않고 이성적인 능력에서 찾으면서, 인간은 다른 부족이나 인종 혹은 신분을 지배하는 것을 목표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성적 잠재력을 충분히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사상이 나타났습니다. 아울러 인(仁)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내세우는 공자의 사상과 존재자들을 비교하고 차별하는 인위가 아니라 자연적인 무위의 도를 구현할 것을 주창하는 노장의 사상이 나타났던 것도 바로 이 차축시대 때입니다. 야스퍼스는 이 시대를 그 이전 시대의 목적이고 그 이후의 시대의 기원이 된다는 의미에서 세계사의 차축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차축시대는 위대한 철학자들에 의해서 건립되었고 이러한 철학자들의 업적은 그 후의 위대한 철학자들에 의해서 계승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야스퍼스는 이러한 위대한 철학자들로서 소크라테스, 불타, 예수, 공자, 플라톤, 칸트, 노자, 용수, 스피노자와 같은 사람들을 들고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서양의 전통철학의 해체를 내세우면서 자신의 철학이 전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보는 반면에, 야스퍼스는 자신의 철학의 과제를 위대한 철학자들의 전통을 보존하고 그들 간의 생산적인 대화를 매개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야스퍼스는 우리의 과제는 전통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차축시대에 위대한 철학자들이 제시한 위대한 삶과 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야스퍼스와 마찬가지로 차축시대 이후의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시대와 지역에 상관없이 사실은 동일한 사태를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야스퍼스는 인간과 세계를 포함하는 존재 전체의 실상은 차축시대 이후 인류의 역사에서 어떤 때는 인격적인 창조주로서 혹은 일자(一者)로서 혹은 세계의 건축가로서 혹은 도(道)로서 혹은 공(空)으로서 혹은 무(無)로서 혹은 사랑으로서 자신을 드러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야스퍼스는 이 모든 것들은 존재 자체에 대한 암호이지 실상 자체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야스퍼스는 모든 철학과 종교는 자신들이 암호에 지나지 않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들이 자신들만이 존재 전체의 실상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고 자부할 때 그것은 다른 암호들에 대한 광신적인 배타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야스퍼스는 이와 함께 세계의 모든 철학이 존재 전체의 실상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서로 대화하면서 서로 돕는 세계철학의 이념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저는 불교와 하이데거의 저술도 존재 전체의 실상 자체를 가리키는 암호라고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동일한 사태를 가리키기에 서로 대화가 가능할 뿐 아니라 서로 간의 대화를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그것이 가리키고자 하는 존재 전체의 실상 자체는 보다 명료하게 그리고 보다 풍요롭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제 논문에서 수행한 불교와 하이데거의 비교뿐 아니라 모든 비교철학은 비교되는 철학들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들 간의 대화를 매개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게 하고 심화하는 것을 목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동안 제가 수행해 온 연구에서 제가 생각하는 비교철학의 이러한 이념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서양철학과 불교를 비교하기에는 불교에 대한 저의 이해가 아직 일천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반야학술상 심사위원회가 이렇게 상을 저에게 수여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과분한 상으로 격려해 주신 반야학술상 심사위원회와 반야학술상을 제정하여 불교학의 발전과 진흥에 애쓰시는 반야불교문화연구원장 지안 스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제 6회 반야학술상 수상자 강연자료(박찬국 교수)http://banya.pibs-app.net/files | 반야불교문화연구원 | 2016-12-05 | 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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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섭(동국대 불교학과) 오늘 저는 불교학술상으로서 권위를 쌓아가고 있는 반야학술상(저서부분) 수상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국불교 및 동아시아불교사상사 분야에는 문학, 사학, 철학, 종교, 예술 등 아직 도달하지 못한 연구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저는 이 학술상을 앞으로도 이 분야 연구의 빈틈을 더 채워달라는 요청과 격려로 알고 더욱 더 정진하고자 합니다. 만학의 제왕은 철학이 아니라 국학입니다. 서양의 철학은 서양의 국학이요, 서양철학사는 서양경학사며, 중국철학사는 중국경학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경학은 ‘보편적인 학문’, ‘영원불변한 학문’, ‘모든 것의 벼리를 이루는 학문’인 반면, 국학은 ‘국소적인 학문’, ‘지역적인 학문’, ‘상대적인 학문’으로 오해받아 왔습니다. 이러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것은 동아시아적 문명질서를 장기간 지배한 중화주의적 권력구조가 뿜어낸 무의식적 편견에 의해 경학과 달리 국학을 국부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치부해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주석학인 경학은 중국의 국학일 뿐이며, 이 국학의 기반을 이룬 문헌 또한 춘추전국시기 이후 서한시대에 뒤늦게 성립한 비중국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국학은 경학에 필적하는 주체적이고 자내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학’이 우리 민족문화와 정신문화의 주체적 표현이라면, ‘한국학’은 우리 민족문화와 정신문화의 타자적 표현입니다. 우리의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종교와 예술에 대한 자내적 지평을 인문학이라 한다면, 우리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와 과학에 대한 객관적 온축을 사회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횡단적 인문학과 종단적 사회학을 아우르는 국학연구가 우리의 정체성을 주체화하는 학문방법이라면, 한국학 연구는 우리의 인식틀을 타자화하는 학문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대자유를 추구하는 불교는 인류의 지혜와 자비를 중도 연기로 총섭하고 있습니다. 상호의존의 연기법과 상호존중의 자비행을 아우르는 불교는 연기의 지혜와 중도의 자비로 우리의 삶터를 질적으로 제고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불학 혹은 불교학은 이 땅에서 오랫동안 국학 또는 한국학의 저변을 이루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 땅의 연구자들에게는 국학 또는 한국학의 기반을 이루는 한국불교사상과 한국불교역사의 기반을 보다 주체화하고 자내화하여 더욱더 객관화하고 타자화하는 노력이 요청됩니다.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의 모든 성취를 일심(一心)의 철학으로 구축한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는 인간의 심연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본래마음’[心源]이자 ‘하나를 향한 그리움’인 일심(一心, 진여)과 일심지원(一心之源, 본각)의 구도로 부처와 중생, 진여와 생멸이 별체가 아님을 확연하게 갈파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원효는 어젯밤 잠자리[土龕-且安]와 오늘밤 잠자리[鬼鄕-多祟]의 분별이 사실은 일심이 지닌 두 측면의 발현이었음을 또렷하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것은 작은 나가 있다는 인식[有我]이 큰 나[無我]를 넘어 더 큰 나[大我, 眞我]로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 과정을 그는 세 가지 미세한 번뇌 즉 삼세(三細)와 여섯 가지 거치른 번뇌 즉 육추(六麤)의 구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원효는 먼저 무명(無明)으로 념(念)이 일어나는 ‘무명업상’(無明業相, 業相)과 마음이 자신을 찾아 바라보려고 하여 능히 보는 모습인 ‘능견상’(能見相, 轉相) 그리고 그 눈에 보여지게 하는 경계로서 나타난 모습인 ‘경계상’(境界相, 現相)의 삼세상(三細相)을 제8(아려야)식에 짝지었습니다. 이어 나를 개별 자아로 잘못하는 모습인 ‘지상’(智相)을 제7(말나)식에 배대한 뒤, 잘못된 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모습인 ‘상속상’(相續相), 유근신의 나는 자신과 자신 밖의 세계를 자와 타, 주와 객으로 이원화해서 집착하는 ‘집취상’(執取相)과 이러한 분별에 사용된 언어에 매인 모습인 ‘계명자상’(計名字相), 의식의 분별 집착에 따라 업을 짓는 모습인 ‘기업상’(起業相)을 제6(요별경)식에 대응시키고, 그 업에 따라 고통의 보를 받는 모습인 ‘업계고상’(業繫苦相)을 고과(苦果)에 배대하여 육추상(六麤相)의 구도 아래 망념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분별사식)과 의(말나식과 아려야식)의 작용, 다시 그것을 상응염(執, 不斷, 分別智)과 불상응염(現色, 能見心, 根本業)으로 해명하고 있습니다. 원효가 근본번뇌에 해당하는 삼세상을 현식(現識)인 제팔식에 배대한 것은 부처의 지위에서 비로소 무명주지번뇌를 끊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며, 분별사식(分別事識)인 육추상의 지상을 제칠말나식에, 생기식(生起識)인 상속상, 집취상, 계명자상, 기업상을 제육요별경식에, 그리고 소생과(所生果)인 업계고상을 고과(苦果)에 배대한 것은 일승과 삼승의 전관적 구도 아래 파악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반면 담연은 삼세를 제칠식이라 하고, 육추를 제육식이라 하였으며, 정영사 혜원은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상, 지상, 상속상까지는 제칠식이라 하였고, 집취상, 계명자상, 기업상, 업계고상을 제육식이라 하고, 아리야식은 직식(直識)이라 하였습니다. 또 법장은 무명상, 능견상, 경계상의 삼상을 아리야식에 배대하면서도 지상, 상속상, 집취상, 계명자상, 기업상, 업계고상의 육추는 육식이라 하여 제칠식은 논하지 않았습니다. 원효가 이들과 달리 삼상을 아리야식에 배대하고, 육추를 각기 제7식과 제6식 및 고과에 배대한 것에서 우리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원효 심성론의 독자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효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국학 혹은 한국학 연구의 최정점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 정신문화대백과사전이라고 할 『삼국유사』는 우리의 유전인자를 담고 있는 서물입니다. 이 저술은 원효의 저술과 함께 국학 또는 한국학의 정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효의 저술이 철학적 지향을 머금고 있다면, 이 저술은 사학적 지향을 머금고 있습니다. 원효의 저술이 인간의 심연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분석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저술은 인간학과 고전학을 아우르고 있는 인문학의 본래적 의미를 되묻고 있습니다. 『삼국유사』가 붓다의 가르침을 머리와 가슴을 넘어 온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원효 저술은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인 중도에 입각하여 사견을 명쾌하게 파척(罷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원효 저술이 철학서로서 한국학의 종축을 담지하고 있다면 『삼국유사』는 사학서로서 국학의 횡축을 견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종축과 횡축, 철학과 역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한국학과 국학의 꽃이 피어나는 것입니다. 인각 일연(麟角一然, 1206~1289)은 선사이면서 국사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는 국사의 자리에 있으면서 강화도경의 국립도서관을 애용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일연이 5권 9편 138조목에 담아낸 『삼국유사』에는 문학, 역사, 철학, 종교, 예술의 가로축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과학의 세로축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가 ‘불법’을 전달하는 ‘전법서’로 기획했든, ‘민족’을 호명하는 ‘역사서’로 기획했든 간에 이 저술은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대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앎과 삶의 경계를 무화시키며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꿈과 희망과 이상과 절망 등이 발효 숙성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불교의 상호존중적 중도행과 상호의존적 연기법대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들 고대인들은 천신, 산신, 무속 신앙을 아우른 풍류도를 통섭한 불교적 세계관 아래서 머리와 가슴을 넘어 온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삼국유사』는 일체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운 생의 의지를 지닌 ‘펄펄 살아뛰는 인간’, ‘적나라한 인간’, ‘벌거숭이 인간’의 자유와 평화를 새로운 삶의 방식과 앎의 양식으로 담아내었습니다. 일연은 어려서부터 효(孝, filial piety) 대한 관심이 매우 깊었습니다. 그는 만년의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국사의 자리에서 물러나 인각사 인근 사가에 어머니를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보살폈습니다. 이러한 그의 효 인식은 『삼국유사』 마지막 부분에 「효선」편을 두는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편에 실린 것은 ‘진정사 효선쌍미’, ‘대성효 이세부모’, ‘향덕사지 할고공천’, ‘손순매아’, ‘빈녀양모’ 등 5편뿐입니다. 하지만 이들 조목에 나타난 ‘효’와 ‘선’ 인식은 유교의 ‘일’(一) 부모를 향한 ‘일효’(一孝)와 달리 ‘만’(萬) 부모를 향한 ‘만효’(萬孝) 즉 ‘대효’(大孝)의 인식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연은 유교의 효행을 적극적으로 섭수하여 불교의 선행으로 확장시키고 심화시킵니다. 그리하여 그는 효의 문제를 정치와 사회와 윤리의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와 철학과 사상의 문제로 환치시키고 있습니다. 삼국유사학이 국학 또는 한국학 연구의 태산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불교연구는 국학과 한국학의 시선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동시에 인간학과 고전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적 시선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종교학이 되었든, 서양철학이 되었든 하나의 범주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아니됩니다. 원효학과 삼국유사학은 하나의 학문적 범주를 넘어서게 합니다. 아니 원효학과 삼국유사학은 하나의 학문적 범주로 온전히 재단할 수 없는 국학 또는 한국학의 태산입니다. 이들에 대한 온전한 궁구(窮究)는 융합 내지 복합의 지평 위에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들 서물들이 국학 혹은 한국학의 태산으로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들 서물에 대한 1천여 편 이상의 연구논문이 나왔지만 아직도 남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것은 원효학과 삼국유사학이 국학 또는 한국학의 태산이라는 점을 반증해 줍니다. 오늘 저는 이 두 주제를 평생의 화두로 들고 때로는 국학의 시선으로 때로는 한국학의 시야에서 또렷또렷하고[惺惺] 고요고요하게[寂寂] 들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 6회 반야학술상 수상자 강연자료(고영섭 교수)http://banya.pibs-app.net/files | 반야불교문화연구원 | 2016-12-05 | 2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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